Joypia
멋진 항아리의 지혜 이야기를 뒤집어 보자 본문
'멋진 항아리의 지혜' 라는 제목의 좋은 글을 접했다. 아마도 누구나 나름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자, 우선 얘기 본문을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다. 금이 갔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찬 모습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간 나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 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오른쪽 길에 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 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보며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이다.
-당신은 금이 가지않은 아내인가?
-당신은 금이 가지않은 남편인가?
-당신은 금이 가지 않은 부모인가?
-당신은 금이 가지 않은 자식인가?
-당신은 금이 가지 않은 오너인가?
좀 금이 가면 어떤가?
틈이 있으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좀 야박한지 몰라도 그럼 이 이야기의 다른 면을 보도록 하자.
이글은 페이스북에 올라 온 것인데, 대부분이 이런 형식의 글이다. 내가 볼 때, 아주 정형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속임수다. 자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능력이나 신체적으로나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 또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이다.
이 글을 퍼 나른 분은 이게 무슨 위로의 글인가 하는 반문을 했는데, 확실히 위로하는 척 하는 이야기이다.
1. 주인과 그 소유물의 관계 설정
대부분의 이런 형식의 글은 의도적인 게 많다. 이런 형식을 취하는 이유는 아마도 신앙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 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으로 성경의 경우 주님과 그의 종인 우리들로 비유가 되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저 이야기가 종교적 의미만 담고 있다면 모르겠는데 이야기 말미에 교훈을 강조한답시고 세상을 거들먹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회사 사장과 직원의 입장으로 보자.
2. 세상은 금이 간 항아리를 쓰지 않는다.
다들 그리도 가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 아니 재벌 삼성만 들어보자. 그들이 가장 중요시한 경영철학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재"이다. 어떤 기업이 성장하려면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직원을 뽑아야 한다. 인사고과를 시행하고 능력에 따라 급여에 차이를 둔다. 한 해 신입직원을 삼천여 명 뽑지만 같은 해, 견디지 못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직원 삼천여 명이 퇴사를 한다.
3. 금이 간 항아리의 운명은 본문처럼 좋은 주인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위 표현대로 일부러 바꾸지 않는 주인이 이 땅에 흔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금이 가도 너희 종들은 쓰임새가 있으니 안심해라 <= 바로 이 뜻인 거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희망을 주는 글이니 좋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 때 이글 때문에 속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모를까.
기업의 오너가 주인이요, 좀 모자라지만 내가 일부러 안 짜르고 쓰고 있으니, 종인 네가 만족하고 열심히 일해라. 똑똑하고 완벽한 놈들은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나쁜 놈들이고, 그들 중 주인인 나는 예외이니 나를 만난 걸 기쁘게 생각하라.
이것이 이글의 요지인 것이다.
4. 삭막하게 만드는 온전한 항아리도 주인은 버리지 않는다.
이글의 모순과 오류는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의 작가는 비교함으로써 주인공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주인은 그 둘 다를 씀으로서 비교 우위에 있지 않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오히려 주인공을 불쌍한 존재로 취급하여 가진 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5. 오히려 이렇게 표현 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이번 좋은 글을 나쁘게 말 해 본다.
금이 간 항아리를 버리지 않는 이유가 네가 황금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네가 금이 갔지만 금으로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단다.
'The other side of Good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랑이 등을 타면 신선놀음? (3) | 2020.11.05 |
---|---|
낮춤과 희생이 승리의 비결이다? (0) | 2020.10.30 |
인생은 과연 게임일까 (2) | 2020.10.29 |
강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0) | 2020.10.28 |
돌아다니는 인디언 격언은 엉터리다 (0) | 2020.10.26 |